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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tmug

시부모님 모시기

바다처럼 넓고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자

부모님들로부터 독립하고자 재택 근무가 가능한 직장으로 옮긴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시어머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다.

이제는 하루 종일 집에서 일하면서 하루 세끼를 챙겨드려야 한다. 이상한건지, 당연한건지,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어쩔수 없는 모든 상황이란걸 이해하고, 외로운 시어머님 좀 더 챙겨드려야지라는 생각도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으로 생길 수 있는, 아니 생길 수 밖에 없는 사소한 불편함들이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어
나를 괴롭힌다.

이제 내 하루의 더 많은 시간이 가족들을 챙기는 일에 들어갈테지, 내 서재도 내 공간도 내 시간도 사라지겠지..
이런 생각들에 조금씩 기분이 다운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사람이었을까라는 죄책감마저 든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딸은 한동안 전면 온라인 수업을 한다고 하고,
명절 뒤 쌓여있는 집안 일에 당장 해야할 밀린 업무들..
무거운 몸과 마음을 다독여가며 하나 하나 챙겨보지만 어떻게 해야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코로나로 직장도 잃고, 혹은 생계 기반을 잃고 살길이 막막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들을 겪는 사람들 생각하면
충분히 감사한 삶이란걸 알지만,

그래도 갖고 싶은 걸 못 가졌을때 마냥 떼 쓰는 아이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냥 투정을 부리고 싶다.
그냥 혼자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몇 일 쉬고 싶은 맘 뿐이다.

10여년전 친정 엄마가 거동이 힘든 할머니를 모시고 살 때
귀가 잘 안 들리던 할머니께 짜증내면서도 매일 씻겨 드리고 음식 챙겨드리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 때 울 엄마도 그랬을까?
며느리 노릇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는 아빠, 혼자서 아둥바둥 집 안일에 할머니, 애들 챙기랴, 일 하랴, 그 짜증나는 상황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그렇게 폭발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힘들지 않았을까?

내 인생의 끝에서 심신이 약해져서 누군가의 보살핌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 온다고 생각해보면
나를 보살피는 일이 누군가의 인생에 짐이 된다고 생각하면 참 서글픈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30대 초반에 결혼하고, 직장 다니면서 아이 낳고 키우면서 정신없는 30대 40대를 보내고,
자식이 커서 겨우 나만의 시간이 가능해지는 순간에 또 다시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상황이 된다는 건..
게다가 내가 정말 잘 해드리고 싶은 우리 엄마, 아빠가 아닌
평생 남남으로 살다가 내가 결혼한 사람의 부모라서 챙겨드려야 하는 그 상황은.. 잘 모르겠다.
나는 예전 우리 어머님들이 그랬듯, 자연스레 당연히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은 안 든다.
아니 잘 해드리면 우리 부모님께 죄송해질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 없는 고민이지만,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고 위선적이라고 해도 좋다.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법은,
같이 사는 건 OK, 하지만 어머님 모시는 일은 당신의 아들이 하는 걸로.
어머님 모시고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집안 일도 더 많이 하고..
그 아들이 얼마나 잘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맞다고 본다.
내가 우리 부모님께 사위 노릇을 해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 만큼, 며느리 노릇에 대한 기대도 없어야 한다.
그냥 같이 사는 거지, 며느리라서 시어머님을 모셔야 한다는 기대가 생기는 순간 서로가 힘들다.
그냥 같이 사는 거다.
나는 같이 살면서도 최대한 내 삶을 살거다. 하고 싶은 일 포기하고 참으며 살지 않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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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투정 부리는거다.
나는 또 웃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사를 챙겨드리고, 불편한데가 없으신지 매일 말동무 해 드리고,
주말마다 모시고 다닐 거고,
행여 집안일 하시겠다고 무리하실까봐 내가 나서서 집안 일도 다 할거다.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그렇게 그렇게 익숙해질거다.
그게 싫어서 투정 한번 부리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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